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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바우 사람들

세상을 밝힌 할머니, 할아버지

 강원도 양양과 삼척엔 기부천사로 알려진 할머니 두분이 계십니다.
 양양에서 욕쟁이 할머니로 통하는 서정순씨(82)와 삼척 중앙시장의 큰손 전정자씨(72) 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고 계신 이들 할머니의 삶의 괘적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먼저 양양 욕쟁이 할머니 얘기를 하려 합니다.
 식당 등을 운영하며 20여년째 봉사활동을 벌여온 서정순 할머니는 지난 4일 오후 2시 반가운 전화를 받고, 급하게 대문을 열고 달려나갔습니다.
 문밖엔 중년의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 박스 1개를 놓고 황급히 자리를 뜨려 하고 있었지요.
 할머니는 15년째 신분을 밝히지 않은채 자신을 돕고 있는 ‘얼굴없는 천사임’을 직감하고 “커피라도 한잔 하자”며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도망치듯 할머니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사라졌습니다.

 

 

서정순 할머니가 지난 15년 동안 얼굴없는 천사가 전달한 돼지저금통을 살펴보고 있다.<양양군 제공>


 박스안엔 어김없이 100여만원이 든 ‘빨간 돼지저금통’이 1개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동안 소리소문 없이 할머니에게 전달한 돈만 1500여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할머니는 “얼굴없는 천사들이 1999년부터 매년 5월 100만원 상당의 현금이 들어 있는 돼지저금통을 집앞에 놔두고 가고 있다”며 “워낙 빨리 사라져 얼굴도 잘 알아 볼수 없다”고 아쉬워 했습니다.
 할머니는 고령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성을 생각해 쉴수가 없었습니다.
 이틀간 돼지저금통에 들어있던 돈을 이용해 순두부, 두부, 도토리묵, 콩나물 등의 각종 반찬을 준비해 7일 양양지역 홀몸노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1946년 경북 안동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서씨 할머니는 1984년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파산하고 강원 속초시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관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할머니 네 분을 돌보는 등 봉사활동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왔습니다.

 

 

서정순 할머니가 지난 15년 동안 얼굴없는 천사가 전달한 돼지저금통을 살펴보고 있다.<양양군 제공>


 서씨 할머니는 1998년 속초시 교동에서 식당을 개업하면서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해졌습니다.
 거침없는 말투로 속마음까지 다 드러낸다는 이유로 ‘욕쟁이 할머니’란 별명이 붙었지요.
 서씨 할머니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홀몸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하는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베푸는 봉사활동을 이어오던중 수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속초에서 운영하던 식당이 모두 침수돼 양양군으로 이사를 했지요.
 서씨 할머니는 이곳에서 아카시아 숲을 개간해 직접 농사를 지어 쌀과 배추 등을 홀몸노인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서씨 할머니를 테레사 수녀로 부릅니다.
 주변 이웃들은 “서씨 할머니가 3년전 건강문제로 집앞에서 운영하던 칼국수집을 정리한 이후에도 반찬 배달 봉사활동 등을 계속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서씨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합니다.
 할머니는 “양양군으로 이사를 왔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없는 천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돼지 저금통을 전달하고 있다”며 “이들의 착한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100살까지는 봉사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서씨 할머니는 2004년부터 성신여대 학생및 교직원들과 양양지역에서 김장봉사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돼 2009년 이 대학에서 명예학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삼척시의 기부천사 전정자 할머니.<삼척시 제공>

 

 삼척 중앙시장의 큰손 전정자 할머니(72)의 선행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2011년 2월 삼척엔 1m가 넘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수 많은 중앙시장 점포들이 폭설로 인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지요.
 상인들이 좌절하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전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삼척시 중앙시장에서 내의와 잡화류를 파는 신창상회를 운영하는 전 할머니는 바로 그해 시장 복구비에 써 달라며 시장조합과 상가번영회 등에 2차례에 1억5000만원을 쾌척했습니다.
 전 할머니는 38년 전 중앙시장에 정착해 점포를 운영해 왔습니다.
 평소에도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남몰래 선행을 베풀었지요.
 전 할머니는 21년 전 남편과 사별했고 외동딸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 할머니는 시장 복구를 위해 거금을 쾌척하면서도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액수가 적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평소 검소한 생활과 선행으로 상인들의 존경을 받는 전 할머니는 2012년 삼척 남영동에서 가스폭발가 났을때도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가스폭발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상인들을 위해 1000만원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은 29.75㎡짜리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남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고 있는 셈입니다.
 전 할머니는 자신의 선행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습니다.
 당시 국무총리의 만남 제안도 거절했던 전 할머니는 언론의 취재도 한사코 거부하고 있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지요.

 접경지역인 양구에는 자녀들이 모아 준 칠순잔치 비용 전액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양구군 해안면 현리에 거주하는 염기철(70) 할아버지는 8일 양록장학회에 1000만원을 기탁했습니다.

 

 

양구군 해안면 염기철 할아버지(오른쪽)씨가 8일 양구군수 집무실을 찾아 고희연 비용 1000만원을 인재양성에 써달라며 전창범 군수에게 전달하고 있다.<양구군 제공>

 이 돈은 할아버지의 자녀들이 칠순잔치를 위해 모아 준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하루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탁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자식들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인과 2남 3녀를 두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양구군 해안면 불모지 30㏊를 개간해 농장을 만들고 감자, 더덕 등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해안더덕농장 대표와 종묘생산업업체인 양구산채종묘영농조합 이사도 겸하고 계시죠.

 선행으로 세상을 밝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장수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할아버지의 더덕농사도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