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어축제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강원도 인제군은 전방지역에 위치해 있다.
신세대들은 보통 이곳을 설악산으로 향하는 길목 정도로 여긴다.
반면 장년층들은 일단 ‘오지’란 단어를 떠올린다.
1980년대까지 입영 장병들 사이에선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자주 오갔다.
힘없고 빽없는 젊은이들이 군대에 갈때 오지인 인제와 원통지역 부대에 배치되지 않길 기원하며 내뱉던 넋두리다.
지금은 서울~춘천고속도로 개설 등 도로망 확충으로 수도권과의 거리가 불과 2시간대로 좁혀지면서 오지란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됐다.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제지역을 살펴보면 어땠을까.
군부대만 많은 그야말로 촌동네였을 게다.
당시 인제 주민들은 나룻배를 이용해 합강을 건너 다녔다.
한국전쟁 직후 낙후된 최전방이었던 인제군에 섹시스타의 대명사인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 1926~1962)가 다녀갔다.
마릴린 먼로가 1954년 인제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병사를 위해 인제성당에서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 <인제군 제공>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며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마릴린 먼로는 1955년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주연을 맡으면서 세기의 ‘섹스 심벌’로 떠올랐다.
뉴욕 렉싱턴 애비뉴 지하철역 환기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붙잡으며 짓는 천진한 미소는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마릴린 먼로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1년전인 1954년 인제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병사를 위해 인제성당에서 위문공연을 했다.
위문공연 장면이 담긴 사진은 현재 인제군청에서 보관중이다.
까마득히 먼 무대위에 두손을 모으고 올라선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진이다.
사진속 미군 병사들의 시선이 흐트러짐 없이 무대에 집중돼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마릴린 먼로의 인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군장병 위문공연에 유명 연예인을 자주 동원한 것은 미국도 한국과 다를 바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국은 정도가 더 심했다.
군장병 위문공연뿐 아니라 정치행사에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0년대 초 유력 정치인이 ‘연예인궐기단’을 만들어 가수, 코미디언, 악단 등을 동원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주민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군복을 입고 공연장에 서는 일도 잦았다.
참 엄혹했던 시절 얘기다.
심지어 전쟁터에 까지 위문공연을 가는 사례도 많았다.
‘엘리지의 여왕’인 가수 이미자씨는 수년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청와대에서 베트남에 파병된 비둘기부대로 위문공연을 가라고 해 위키리, 곽규석, 구봉서씨 등 과 함께 전장인 사이공(현 호찌민)으로 갔다”고 밝혔다.
이미자씨는 그 위문공연 당시 자동차 사고로 차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혀 흉터가 생기기도 했다.
가수 인순이씨가 홍천에 문을 연 해밀학교 개교식에 참석한 패티김씨.
패티김씨도 작곡가이자 첫 남편이었던 길옥윤씨와 베트남으로 신혼여행을 가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다.
물론 예전에 비해 빈도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요즘도 군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은 이어지고 있다.
자발적인 참여가 주를 이루는 등 성격도 크게 달라졌다.
엉덩이를 흔들거리는 시건방춤을 추며 ‘알랑가 몰라’(젠틀맨)를 외치는 가수 ‘싸이’도 전역후 몇차례 군장병 위문공연에 참여 했다.
병역 부실 복무를 이유로 2007년 재입대한 바 있는 싸이는 당시 출연료를 군부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서울의 모부대에서 위문공연을 가진 걸그룹 ‘걸스데이’는 ‘멜빵춤’을 선보여 장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이처럼 대부분의 걸그룹은 위문공연 참여에 적극적이다.
장병들 또한 젊은 피가 흐르는 주요 팬층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공연은 흥을 더욱 북돋운다.
앞으론 어쩔 수 없이 이억만리 타국까지 날라가 군 장병 위문공연에 참여하는 ‘제2의 마릴린 먼로’가 나타나지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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