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호반의 도시다.
도심 전체를 호수가 감싸고 있다.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물길을 헤치는 유람선은 주변경관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진경산수’를 연상케 한다.
잠시 머물러도 푸근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경춘선 폐선으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북한강의 절경에 취했던 낭만은 사라졌지만 복선전철 개통과 준고속열차인 ‘ITX-청춘’ 운행 이후 방문객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외지인들은 춘천 하면 가장 먼저 ‘막국수’를 떠올린다.
춘천 막국수
춘천이 미각을 자극하는 맛의 고장으로 이름나게 된 데도 막국수의 역할이 가장 컸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막국수를 여름철 별미로 여긴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에겐 겨울철 긴긴 밤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밤참이었다.
일부 애주가들은 해장에 좋은 음식이라 주장한다.
이곳에선 투박스럽게만 느껴지는 ‘막국수’가 냉면의 아성을 무너뜨린지 오래다.
냉면처럼 쫄깃하지도, 쫄면처럼 매콤하지도 않은 막국수가 사계절 각광받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메밀 특유의 구수함과 단백함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 농촌지역의 질박한 인심이 담겨 있는 듯 소박해 보이기만한 막국수는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리는 데 그만이다.
막국수체험박물관<춘천시 제공>
막국수는 본래 맷돌로 메밀을 갈아 분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은 것을 따로 모아 빻은 막가루로 만든 국수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면이 뚝뚝 끊어지고 금방 불어버리기 때문에 만들자마자 ‘막(바로)’ 먹어야 한다는 뜻에서 명칭이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예전에는 메밀가루를 반죽한 후 틀에 넣고 국수를 뺀 뒤 찬물에 헹구어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거나 약간의 양념을 넣는 것이 보통이었다.
현재와 같이 갖은 양념을 사용하거나 고명으로 모양을 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가난한 서민들이 식사대용으로 즐겨먹던 소박한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춘천 막국수의 발생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식생활 그 자체여서 정확한 발생기원을 밝히는 데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말한다.
민중의 삶 속에서 생존의 수단이 된 음식이어서 연대기적 기록에 의한 전수물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옛 경춘선 백양리역 주변에 조성된 메밀밭<춘천시 제공>
굳이 우리나라에 도입돼 오랫동안 구황작물로 이용되어온 메밀의 재배역사 등을 쫓아 막국수의 유래를 살펴본다면 고려 고종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밀은 7∼8세기 이전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메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고종시대에 편찬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격적인 기록들은 조선시대에 많이 엿보인다.
춘천 등 강원 영서지방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된 막국수가 상업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전쟁 직후 많은 주민들이 막국수를 만들어 주막거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때부터 춘천 막국수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춘천 도심지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막국수 전문점은 2012년말 기준으로 160여개 업소에 달한다.
각종 야채와 소스를 곁들여 신세대 입맛에 맞게 개발한 쟁반막국수, 뜨거운 육수에 말아먹는 온면막국수를 비롯해 산채막국수, 꿩막국수 등 막국수의 종류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유포리막국수집’과 ‘샘밭막국수집’은 점심시간이면 좀처럼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성업중이다.
막국수 등 메밀을 주 원료로 한 음식들이 최근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데도 다 이유가 있다.
메밀에는 혈관 저항을 강화시키는 루틴(rutin)이라는 플라보노이드계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뇌일혈 예방,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산화·항균작용을 하는 퀘르세틴, 미르레세틴 등의 플라보노이드 등도 들어 있다.
이밖에 칼륨을 비롯해 마그네슘, 칼슘, 인, 철분의 함량이 많고, 망간, 아연, 나트륨, 셀레늄 등도 미량 함유되어 있다.
한방에서는 이질과 대하증을 멎게 하고 해독, 창종제거, 위장염, 대장염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메밀을 콩나물 형태의 채소로 재배하여 메밀싹으로 하면 각종 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루틴(rutin)성분이 메밀의 종실보다 수십배 늘어난다.
최근 막국수에 메밀싹을 고명으로 올려주는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축제도 즐겨요 =그동안 춘천 막국수·닭갈비축제는 8~9월 사이 춘천 수변공원 중도 선착장 주변 등에서 열려왔다.
2013년엔 6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옛 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 부지에서 열린다.
2013 막국수닭갈비축제가 열릴 예정인 캠프페이지 부지 항공사진<춘천시 제공>
기존 축제 개최시기가 태풍 북상시기와 맞물려 행사 운영과 방문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데 따른 것이다.
춘천시 축제조직위원회는 막국수와 닭갈비에 한정됐던 축제 콘텐츠도 마임과 인형극 등 공연행사를 확대, 문화축제 성격을 강화키로 했다.
이를 위해 조직위는 공모를 통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선정할 예정이다.
축제개최 장소도 시민과 관광객 접근 편의를 위해 도심과 춘천역에서 가까운 캠프페이지로 결정했다.
춘천 막국수·닭갈비축제에는 해마다 20만~30만명 가량의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은 축제기간 동안 한자리에서 각종 문화행사를 즐기며 다양한 종류의 막국수를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한편 축제장 주변엔 대형 메밀밭도 조성돼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경향신문 최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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