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하나로 만들어낸 구수한 맛의 진수…. 그러나 먹고나서 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프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 선생의 문학 혼이 살아숨쉬는 강원 평창군 봉평면을 비롯, 이 일대에서 열리는 5일장 장터를 찾으면 다소 이색적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다름아닌 ‘올챙이 국수’다.
이곳을 처음 찾은 관광객들에게 “올챙이 국수 한그릇 하며 시장기부터 달래시죠”라는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이내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올챙이 국수에도 올챙이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나서야 표정들이 밝아진다.
올챙이 국수는 짧고 굵게 끊어진 노르끄레한 면발이 마치 올챙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올챙이 국수
◇짧고 굵게 끊어진 면발이 올챙이 닮아
처음 이 국수를 접하게 되면 “이거 간장맛밖에 모르겠는 걸…. 이름만 독특했지 별맛 없잖아”라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외지관광객들이 올챙이 국수를 먹고 실망감을 표시할 바로 그때 현지 주민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한번 더 드셔보시죠”라고 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극적인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씹을 틈도 없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올챙이 국수의 참맛을 단 한번에 느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종 메옥수수를 재료로 면발을 뽑아 천천히 곱씹다 보면 다른 국수보다 단백하고 고소한 맛이 돋보인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옥수수 특유의 달착지근한 맛도 또다른 매력이다.
미식가들이 평창 하면 이효석 선생이나 스키장을 떠올리기보다 올챙이 국수부터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시절, 강원 산간지역 주민들은 모자라기만 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화전(火田)을 일궜다.
또 척박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옥수수, 감자, 메밀 등을 주로 심었다.
이같은 구황작물을 많이 재배하다 보니 메밀 막국수, 메밀전, 메밀묵, 메밀전병, 감자떡, 감자옹심이, 감자부침개 등 메밀과 감자를 주재료로 한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올챙이 국수도 옥수수를 맷돌에 대충 갈아 밥을 짓거나 그냥 삶아 먹는데 진력이 난 주민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별식이란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처럼 주민들의 삶 속에서 묻혀 자연스럽게 생겨난 음식인 터라 올챙이 국수의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올챙이 국수를 만들기 위해 갈아놓은 옥수수를 가마솥에 삶는 장면.
◇서민들의 애환 담긴 담백하고 고소한 맛
장터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들은 올챙이 국수에 대해 묻자 “옛날 아낙네들이 강냉이(옥수수의 강원도 사투리) 먹는데 지쳐서 만들었겠지….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아 촌사람들은 좋아하는데”라며 빙긋이 웃는다.
평창뿐 아니라 양구, 인제, 홍천 등 강원 산간지역 곳곳에서도 간혹 올챙이 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보면 할머니의 설명이 현답인 듯하다.
평창의 올챙이 국수는 이 지역 주변에 관광명소가 산재해 있어 유명세를 탈 수 있었다.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입소문을 통해 그 독특한 맛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해지자 요즘은 장날에 맞춰 이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챙이 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노란색을 띤 메강냉이 알맹이를 맷돌에 갈아 체에 거른 다음 가라앉은 침전물을 삶아 묵이나 죽처럼 만든 후 틀에 넣어 면발을 빼내면 된다. 국수틀은 대개 바가지에다 구멍을 뚫어 사용하거나 판자로 사각형틀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때 찬물에 면발을 떨구어야 국수모양이 변하지 않고 풀어지지 않는다.
올챙이 국수의 요리법이 묵과 흡사해 ‘올챙이묵’ 또는 ‘올창묵’으로도 불린다.
재래식 간장에 풋고추를 썰어 넣어 만든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고 묵은 김치나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제격이다.
흐물흐물해 젓가락으로 잘 집히지 않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보통이다.
소화가 너무 빨리 돼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프다는 말도 있지만 면을 씹을수록 새로워지는 풋옥수수의 향은 고향의 향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올챙이 국수가 이 고장의 독특한 별식이긴 하나 이것만을 파는 전문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겨울철에도 맛볼 수 있지만 여름철 풋옥수수로 만든 것과 그 맛이 비교가 안되는 데다 가격 또한 한그릇에 보통 1,500~2,000원선으로 가락국수 값보다 싸 이것만으론 가게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올챙이 국수는 여름철 장마가 끝나고 옥수수가 익어갈 무렵부터 늦가을까지 평창장, 진부장, 대화장, 봉평장, 미탄장 등 평창지역에서 열리는 5일장 장터에서 주로 맛볼 수 있다.
5일장이 서면 시골 아낙네들은 커다란 다라이에 올챙이 국수를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장거리 모퉁이에 나타난다.
“올챙이 한그릇해…. 구수한 맛이 그만이야” 정겨움이 물씬 풍겨나는 시골장터 속에 아낙네의 외침소리가 울려퍼지면 장을 보러왔던 많은 사람들은 올챙이 국수를 맛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편 옥수수는 신장병, 수종에 효과가 있고 수염은 예로부터 이뇨제로 사용하여 왔다.
옥수수차는 고혈압 및 소화에 좋으며,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창/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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