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의 으뜸으로 꼽히는 강릉 경포대를 둘러본 후 인근 초당마을을 그냥 지나치면 ‘멋은 알되 맛은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동해바다와 맞닿은 해변가 소나무 숲속에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초당마을.
그곳에 가면 타지역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두부가 있다.
동해의 맑은 바닷물로 간을 맞춘 ‘초당순두부’가 바로 그것이다.
초당순두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 중 하나로 꼽히는 두부는 조리법 또한 다양해 주부들이 밥상에 자주 올리는 단골 메뉴이다.
그러다보니 흔히 두부 자체의 맛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나무 숲속에 위치해 솔향기가 진동하는 초당마을에서 순두부 맛을 보게 되면 이같은 통념은 여지없이 깨진다.
초당순두부는 부드럽고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뒷맛 또한 깨끗하고 담백해 고소함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홍길동전과 초당두부
초당순두부의 유래를 더듬다 보면 400여년 전인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당두부란 명칭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남긴 교산(蛟山) 허균 선생과 동양 삼국의 최고 여류시인으로 명성을 날린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1517∼1580년) 선생이 광해군 때 당파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고 강릉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 사용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강릉지역엔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집앞의 샘물맛이 좋아 그 물로 콩을 가공,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이후 두부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자 허엽이 자신의 호인 ‘초당(草堂)’이란 이름을 붙여 초당두부의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향토학자들은 교산 허균 선생의 시에 어려서 살았던 초당 지명이 등장하고 허난설헌의 시에도 강릉땅을 그리워하는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는 점으로 미뤄 당시 초당마을에서 부친인 허엽과 두부음식을 자주 즐겼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초당동의 샘터자리와 난설헌 허초희, 교산 허균의 생가는 지방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추억속의 두부장수
초당순두부 제조법은 입소문을 통해 전래돼오다 100여년 전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때부터 초당마을에 수공업으로 두부를 제조하는 가구가 운집해 저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살려 맛 경쟁을 벌이며 강릉 도심에 두부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초당마을 아낙네가 밤을 지새우며 따끈따끈한 순두부와 모두부를 만들어내면 남정네들은 이른 새벽 리어카에 구수한 손맛을 싣고 어김없이 시내로 향했었다.
초당순두부 차림상
◇관광명소가 된 초당두부 마을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강릉지역 주택가 골목 곳곳에선 새벽 해무를 뚫고 딸랑이 종을 흔들며 “입안에서 살살 녹는 두부 사려”를 외쳐대는 두부장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초당두부의 독특한 맛에 길들여져 아침식사를 두부만으로 때우는 가정까지 급속히 늘어났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초당마을 두부장수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당마을에 순두부 전문음식점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1979년부터다.
3∼4대째 가업으로 맥을 이어오며 두부를 제조해 판매해오던 초당마을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두부를 사러 시골집까지 찾아오자 마을 입구 솔밭 주변에 하나둘씩 음식점을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이기 시작한 순두부 음식점이 이젠 20여개에 달한다.
또 무허가식품 제조 논란이 일면서 83년 현대화된 두부공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강릉초당두부 최선윤 대표는 “두부를 섭씨 3∼4도의 냉각수에서 급속 냉각시키는 것이 제조당시 순수한 맛을 유지시키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초당마을 주민들은 초당두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산·학·연컨소시엄을 통해 천연응고제를 이용한 두부제조기술 개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전통의 맛과 현대화된 새로운 맛이 공존하는 초당마을엔 사계절 송림 사이로 고소한 순두부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이곳만의 독특한 맛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맛집 : 강릉 ‘초당 할머니 순두부집’
‘초당 할머니 순두부집’은 30여년간 한결같은 맛으로 초당 순두부를 명품요리로 각인시킨 순두부 전문점이다.
순두부 백반을 시키면 순두부 한그릇과 다섯가지 반찬이 나온다.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생산되는 콩만을 고집해 단백한 맛이 돋보이는 순두부와 대파를 숭숭 썰어 넣은 양념장, 소금에 석달가량 삭힌 고추를 된장에 버무린 고추무침, 집 된장으로 삼삼하게 끓여낸 된장찌개.
그리고 콩물을 걸러 남은 비지로 만든 비지장과 3∼5년가량 묵혀 발효시킨 감칠맛 나는 묵김치가 전부다.
언뜻 소박하게 보이지만 이곳에서 순두부 백반을 한번 맛본 사람은 독특한 그 맛을 잊지 못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입맛이 없어 거르기 쉬운 아침식사로 그만이라는 것이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강릉 초당 할머니 순두부집 김영환씨가 두부를 만들고 있다.
“8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돋보이게 하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정성으로 평생 순두부를 만들어온 어머니의 손맛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된 거죠. 나만의 콩불리는 시간과 간수 배율 조정이 순두부 맛의 비결이지요”
주인 김영환씨(60)는 이른 아침 시장기를 달래려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매일 새벽 3시30분쯤 어김없이 일어나 직접 두부를 만들고 있다. (033)652-2058 최승현 기자cshdmz@kyunghyang.com
'강원도의 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이 내리는 맛 인제 용대리 황태 (0) | 2013.04.15 |
---|---|
냉면 아성 넘보는 춘천 막국수 (1) | 2013.04.07 |
양양 명품 송이 (0) | 2013.03.17 |
평창 올챙이 국수 (0) | 2013.03.17 |
송강 정철선생의 미각을 사로잡은 꾹저구탕 (0) | 2013.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