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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바우 사람들

살신성인 유정충 선장이 그립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장의 역할론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세월호 선장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친 비겁한 선장 얘기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근해를 지나다 좌초해 30여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콩코르디아호의 선장은 승객들을 버려둔 채 먼저 탈출해 공분을 샀습니다.
이탈리아 검찰은 그에게 2697년 형을 구형했습니다.
콩코르디아호의 승객 300명이 넘는 것을 감안, 승객 1인당 8년여를 매겨 산정한 구형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사례를 들어 세월호 선장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세월호 선장과 비교되는 또 하나의 사례는 ‘하나호’ 유정충 선장입니다.

 

고 유정충 선장 추모제.<속초시 제공>


유 선장은 어민들에게 살신성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강원지역 어민들은 강산이 몇번 바뀐 요즘도 유 선장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100t급 채낚기 어선인 ‘602 하나호’ 침몰사고는 1990년 3월 1일 제주도 남서방 370마일 해상에서 발생했습니다.
하나호는 속초항을 출항해 제주 마라도 쪽으로 조업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갑자기 몰아친 폭풍으로 인해 기관실이 침수되자 유 선장(당시 44세)은 즉시 퇴선명령을 내렸습니다.
급박한 상황임을 감지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유 선장은 선원 21명이 모두 구명정에 탄 것을 확인한 후 통신실에 구조신호를 보내다가 끝내 배와 함께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유 선장의 구조요청 신호를 포착한 선단에 의해 선원들은 모두 구조됐습니다.
당시 선원들은 “선장님이 배에 남아 긴급 구조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 선장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유 선장의 장례식은 같은 달 9일 ‘전국 어민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전국 어민장은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이후 정부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추서했고, 유 선장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기념사업회는 1991년 1월 속초에 4m 높이의 ‘유정충 선장 추모 동상’을 건립했습니다.

 

고 유정충 선장 추모제.<속초시 제공>


속초시는 유정충 선장의 전국 어민장이 개최됐던 3월 9일을 ‘전국 어업인의 날’로 제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어민들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당시 유 선장의 장례를 전국 어민장으로 치렀겠냐고 반문합니다.
지난달 속초 청초호 유원지에선 유정충 선장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이곳은 유 선장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유 선장의 아들을 비롯, 지역의 기관단체장과 어업인 등이 다수 참석했습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유 선장의 살신성인 정신은 어업인의 자긍심으로 가슴 깊이 남아 있다”고 추모했습니다.
유 선장의 아들은 “평소 아버지께서는 늘 선원과 선원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선장의 역할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요즘 고인이 된 유정충 선장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먼저 보살핀 유 선장의 고귀한 뜻이 어민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많이 전파되길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