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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바우 사람들

리멤버 태풍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언제나 태풍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장마 뒤에 찾아온 태풍으로 인한 수해현장의 참상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2년 8월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강릉에 있던 한 지인은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빨리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바로 끊었습니다.
 강원지방경찰청 기자실로 향하던 차를 급히 강릉방향으로 돌렸습니다.
 지인의 목소리가 워낙 다급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폭우속에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길을 거의 다 내려가 성상면을 목전에 둔 때였습니다.
 차량 후사경엔 영화에서 나 본 듯한 장면이 비쳤습니다.
 불어난 계곡의 급류가 황톳물을 토해내며 차량 바로 뒤 도로까지 집어 삼키고 있었죠.
 정말 모골이 송연해 졌습니다.
 정신 없이 가속페달을 밟았습니다.
 강릉 성산면의 한 민가 부근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도로의 절반 가량이 휩쓸려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이후 강릉시청 앞에 도착하자 RV 차량 본닛 위까지 물이 넘쳤습니다.
 장현저수지 아래 위치했던 마을은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시가지 전체는 물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태풍 ‘루사’가 동반한 강풍과 폭우로 인해 강릉시 강남동 도로 일대가 인근 공사장과 주택가 등에서 쏟아진 건축자재와 쓰레기, 가재도구 때문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경향신문 DB>

 

태풍 ‘루사’가 뿌린 집중호우로 붕괴된 강원 강릉시 장현동의 한 가옥 옆에서 주민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보고 있다<경향신문 DB>


 당시 기상관측 이후 최대 일일 강수량인 870.5㎜의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냈던 태풍이 바로 ‘루사’였습니다.
 ‘루사’로 인한 피해는 그야말로 막대했습니다.
 강릉지역에선 사망 46명, 실종 5명, 부상 17명 등 68명의 인명피해와 8000억원의 재산피해 발생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5조1479억원이라는 금세기 최고의 재산 피해는 물론 사망·실종자 246명에 달했죠.
 상황이 얼마나 급했으면 강릉시청 상황실에 있던 시장이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봉저수지에 물이 넘치려 합니다. 이 저수지가 터지면 10만여명이 몰살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을까요.
 너무도 처참했기에 11년이 지난 지금도 강릉시민들은 ‘리멤버 루사’를 외치고 있습니다.

 

태풍 ‘루사’의 최대 피해지인 강원 강릉시 강남동에서 군 장병들이 수해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경향신문 DB>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잊지 못하고 있는 강릉시민들은 이후 타지역에서 수해나 폭설피해가 발생하면 ‘보은의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홍천군 서면 주민들도 강릉시민들 처럼 수해의 아픔을 좀처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름 강변 피서지로 유명한 홍천군 팔봉산 유원지에도 잊지못할 수해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홍천군은 30여년전 수해로 유실돼 홍천강 물속에 있던 구 팔봉교의 잔해물을 최근 모두 철거했습니다.
 구 팔봉교는 1981년 5월 12일 나룻배를 타고 광판장에 다녀오던 주민 8명이 거센 물결과 갑자기 일어난 돌풍으로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이듬해인 1982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이후 길이 300여m, 폭 3m의 철제다리는 또 다시 수해로 유실돼 그 잔해들이 홍천군 서면 팔봉리와 어유포리의 강물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철교의 수중 잔해물은 팔봉산유원지를 찾는 물놀이 관광객과 내수면 어업에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였습니다.
 홍천군이 이번에 인양한 철교 잔해물의 무게만 총 1만2450㎏에 달합니다.

 

 

추모비<홍천군 제공>

 

 

최근 인양한 구 팔봉교 수중 잔해물.<홍천군 제공>


 철교 잔해물 인양으로 수해의 상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상처는 장마철이 도래하거나 태풍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되살아 나곤 합니다.
 지난 20여년간 강원도내 각 시·군은 큰 수해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하천 제방과 배수로 등을 정비해 왔습니다.
 이같은 정비사업으로 과거와 같은 큰 물난리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반면 아직까지도 재해위험지구로 분류된 곳이 여진히 많다며 주의를 촉구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다시한번 주변을 꼼꼼히 살펴볼 때입니다.
 리멤버 ‘루사’, 리멤버 ‘팔봉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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