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9월의 일이다.
무장공비를 태운 북한 잠수함이 강원 강릉시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하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당시 한달이 넘게 출장을 다니며 국군의 무장공비 추격전을 취재했다.
그중 특전사와 무장공비간 교전이 벌어졌던 강릉 칠성산(해발 953m) 아래에서 잊지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40~50대 여성 20여명이 몰려들어 군부대 관계자들에게 간청을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서로 다른 사투리가 들려왔다.
부산, 마산, 전주, 서울 등지에서 왔다는 이 여성들은 “자식들의 안부를 확인해야 겠다”며 면회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정은 이랬다.
자녀가 복무중인 부대가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동원됐다는 소식을 듣고 염려돼 한 걸음에 달려왔다는 것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총성도 자식을 생각하는 ‘모정의 발길’을 막진 못했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됐다.
강릉 노추산 '모정의 탑길' <강릉시 제공>
18년의 세월이 흐른 2014년 6월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경계근무를 서던 동료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무장탈영한 장병을 추적하는 작전이 벌어진 강원 고성군 현내면 일대에서 취재를 하던중 여러명의 어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검거 작전에 투입된 아들이 걱정돼 밤잠을 설쳤다는 한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발길이 고성으로 향하더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같은 장면은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남성들이 왜 많은지 쉽게 설명해 주는듯 했다.
강릉 노추산 '모정의 탑길' <강릉시 제공>
강원 강릉시의 노추산 자락엔 한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실감할 수 있는 이색적인 길이 있다.
바로 ‘노추산 모정의 탑길’이다.
이곳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3000여개의 돌탑이 자리잡고 있다.
노추산 계곡을 따라 1㎞ 넘게 이어져 있는 모정탑길은 2011년 숨진 차옥순씨(당시 68살)가 만든 것이다.
높이 1m에서 2m 넘는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아들 2명을 잃은 데 따른 상실감으로 인해 괴로워 하던 차씨는 꿈에서 만난 산신령으로부터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이 편안해질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차씨는 꿈에 본 계곡을 찾아 헤맸다.
노추산을 선택한 차씨는 1986년부터 26년 동안 산속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돌탑을 쌓았다.
산 속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등짐으로 돌을 날라다가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아 올렸다.
차씨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돌탑을 잘 관리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왕산면 대기리 주민들은 차씨의 정성을 생각해 돌탑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강릉시로부터 1억9000여만원을 지원받아 모정의 탑길 주변에 주차장과 캠핑장, 돌탑 체험장 등도 조성했다.
강릉 노추산 '모정의 탑길'
이같은 사연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관광명소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모성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한번 느껴보는 소중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입시철에는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다.
모정의 탑길을 걸으며 두손을 모아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부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강릉시는 주변에 산책로와 등산로 개설, 야생화 단지와 지압로 조성 등의 추가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화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국내 대표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인 안반데기 등과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올 여름 피서철, 가족과 함께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산골 마을을 주목받게 한 모정의 탑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가족애가 더욱 돈독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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