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0년전 일입니다.
달리기를 잘 하지 못했던 초등학교 3학년에게 5월 열리던 운동회는 즐거운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3등에게 까지 주어지던 공책이나 책받침을 단 한번도 받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혹 운이 좋아 4명이 한조가 돼 달리게 되면 앞서가던 3등이 넘어지길 바란적도 있습니다.
점심 시간 때 어머니께선 “넌 꼴등으로 달리면서 왜 자쭈 뒤는 돌아 보냐. 너 보다 달리기 못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며 웃으시기도 했지요.
경쟁 없는 운동회인 춘천 호반초등학교 ‘호반 놀이 한 마당’ 장면. <강원도교육청 제공>
일상적인 학교생활이나 학업에선 다른 학생에게 뒤질게 없었으나 운동회 때 만큼은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3살 많은 형이 각 종목에서 1~2등을 해 공책을 받을 때 마다 부러운 눈길만 보낼 수 밖에 없었죠.
같은 형제인데 왜 나는 이렇게 다를까,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운동회가 내게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만 준 것은 아닙니다.
더 곤혹스런 일도 있었죠.
보통 운동회가 열리기 2~3주전 매일 운동장에 모여 학부모들에게 선보일 단체 율동과 체조를 배우느나 비지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넌 왜 자꾸 틀려”. 선생님의 질책도 당시엔 퍽 무서웠습니다.
몸놀림이 어수룩했던 전 다른 학생들이 하교한 후 운동장에 남아 ‘나머지 연습’까지 해야했습니다.
경쟁 없는 운동회인 춘천 호반초등학교 ‘호반 놀이 한 마당’ 장면. <강원도교육청 제공>
어린 제게 즐겁게 놀아야 할 5월은 그렇게 잔인했습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을 관리하던 선생님들도 무척 힘드셨을 겁니다.
요즘 달리기를 잘 못하는 아들과 딸에게 전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그래도 너희들이 아빠 보다 잘해. 열등한 유전자를 물려줘 미안하다.”
돌이켜 보니 비록 달리기를 잘하지 못해도 인생을 살아가는덴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단지 운동회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을 뿐이죠.
그런데 최근 춘천지역의 한 초등학교가 ‘경쟁 없는 운동회’를 개최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참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춘천 호반초등학교는 5월 4일 교내에서 운동회 격인 ‘호반 놀이 한 마당’을 개최했다고 합니다.
이번 행사는 점수를 매기는 운동회 문화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놀이마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주제도 ‘놀자, 뛰자, 웃자’ 입니다.
경쟁없는 운동회이다 보니 청군 백군도 없습니다.
이날 학교엔 교직원과 학부모가 운영하는 놀이마당 14개와 먹거리 마당 3개가 설치됐습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중요한 가치인 협력과 규칙, 민주성과 같은 규범을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입니다.
경쟁 없는 운동회인 춘천 호반초등학교 ‘호반 놀이 한 마당’ 장면. <강원도교육청 제공>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땡볕 아래 입장과 퇴장을 연습했던 예전 운동회와 다르게 접근해보면 어떨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놀이마당을 6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맞습니다.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 교육 구성원 모두가 함께 즐겁게 놀고 뛰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모든 학교의 운동회가 춘천 호반초등학교 처럼 바뀌길 기원해 봅니다.
이는 달리기를 잘 못하는 저만의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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