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자바우 사람들

감자바우 장학금 릴레이….

 1일 전방지역인 강원 양구군의 군수 집무실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지난해 이맘때 쯤에도 군수실을 방문했던 안혜진씨(29)였다.
 그는 이날 전창범 양구군수에게 양록장학기금으로 써달라며 100만원을 전달했다.
 이어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아 큰 도움이 됐었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안혜진씨(오른쪽)가 전창범 양구군수에게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양구군 제공>


 양구군 해안면 출신으로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강원외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안씨는 지난 2007년, 2008년, 2012년에 각각 10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한 바 있다.
 자신이 받았던 혜택을 고맙게 여겨 ‘보은의 장학금’ 기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씨와 같은 사례는 또 있다.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양구 출신 소프라노 이효영씨(32)도 지난해 7월 보은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당시 이효영씨는 어머니 김연숙씨와 함께 양구군청을 방문해 “대학 재학 시절 양록장학금을 받아 큰 도움이 된 만큼 후배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100만원을 전달했다.

 

양구 출신 소프라노 이효영씨(오른쪽)가 장학금을 기탁한후 전창범 양구군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양구군 제공>


 양구중학교 출신으로 프랑스 리옹국립고등음악원에서 수학한 이씨는 지난해 7월 잠시 귀국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독창회를 열고, 수익금 중 일부를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밖에 대전 서부교육지원청에서 특수교사로 재직 중인 김혜임씨도 지난해 200만원을 기탁했다.
 그 또한 학창시절 양록장학금 수혜자다.
 장학금을 받았던 선배들이 고향을 잊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다시 장학금을 기탁하며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전직 자치단체장 가족들의 지역 사랑도 대단하다.
 고(故) 임경순 전 양구군수의 부인인 안경애씨는 지난달 20일 양구군을 방문, 지역 인재 양성에 소중하게 써달라며 양록장학금 기금 735만원을 전달했다.

 

고(故) 임경순 전 양구군수의 부인인 안경애씨(오른쪽)는 양구군을 방문, 전창범 양구군수에게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양구군 제공>


 이 장학금은 민선 1·2·3기 양구군을 이끌었던 남편 고(故) 임경순 전 군수의 유지에 따라 가족들이 장학금 기탁을 위해 적립한 1억원의 기금에서 발생한 이자다. 안씨는 지난 2008년 213만원, 2009년 500만원, 2010년 304만원, 2011년 357만원을 각각 기탁했다.
 안씨는 “평소 지역 후배들을 남달리 아꼈던 남편도 무척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인구 2만2800여명의 초미니 자치단체인 양구군의 ‘양록장학회’가 설립된지 17년만에 70억1000만원(2012년말 기준)의 장학기금을 조성한 힘은 바로 이같은 릴레이 기부에 있다.
 설립 당시 출연금이 3억여원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강원도엔 산골주민들이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 대도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100억원대 초대형 장학기금’을 조성한 곳도 있다.
 (재)정선장학회의 2013년 1월기준 장학기금 조성액은 93억8000여만원에 달한다.
 1987년 설립당시 9100만원으로 출발한 장학회의 몸집이 26년만에 100배 이상 커진 것이다.
 장학기금 증가추세를 감안하면 오는 2014년 상반기중 기금조성액이 1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초까지 탄전도시로 번성했던 정선군은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43개에 이르던 탄광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30여년만에 평범한 농산촌으로 전락했다.
 1978년 13만 9892명을 기록했던 정선군의 인구는 1990년 8만8377명, 2001년 4만9111명, 지난해말 3만9915명으로 급감했다.
 지역 회생방안 마련에 고심하던 정선군은 장학사업 확대에 촛점을 맞췄다
 교육을 살려야 날로 위축되고 있는 지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선군이 빈약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올해 6억5000만원을 장학기금으로 출연하는 등 10여년전부터 매년 출연금을 늘려나가자 지역 주민들과 사회단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정선읍 비봉경로당 회원들은 만두를 빚어 판매한 수익금 40만원 전액을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정선고 학생들도 시상금 10만원을 쾌척했다.
 정선군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한 이후 장학기금 적립에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최승준 정선군수(오른쪽)가 민병희강원도교육감과 함께 학생들에게 급식을 나눠주고 있다. <정선군 제공>


 최승준 정선군수(57)가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관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전면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4만명도 채 안되는 인구에 재정자립도가 23%에 불과한 소규모 자치단체가 무리한 시책을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도 일었으나 최 군수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채 무상급식을 강행했다.
 최 군수는 “무상급식 예산 대부분이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고 나머지도 주민소득인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어 예산이 지역에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한 학부모는 “정선군이 유치원및 초·중·고를 대상으로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어 타지역보다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며 1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무상급식 효과를 경험한 일부 주민들이 경감된 자녀의 급식비를 다시 장학금 기탁으로 환원한 것이다.
 정선장학회의 개인 기탁자는 3799명에 달한다.
 이중 31명은 매달 3만원~10만원씩을 정기 기탁하고 있다.
 주민들은 “장학사업 등 교육지원 사업 확대가 인구 감소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감자바우로 불리는 강원도에서 장학금 릴레이가 이어져 ‘초대형 장학회’ 탄생 소식이 쏟아져 나올 날도 머지 않은 듯 싶다.
경향 최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