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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생태 이야기

아까시나무와 세옹지마

 인간사 세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습니다.
 길흉화복의 변화가 많다는 말이지요.
 정말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혹 나쁜 일이 생겨도 슬퍼할 것만은 아니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같은 이치일 겁니다.
 중국 북쪽 변방의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났다가 몇 달 뒤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올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나무중엔 세옹지마란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아까시 나무일겁니다.

 

 

 


 아까시나무는 봄철 황홀한 꽃 향기를 풍기면서도 그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게 사실입니다.
 사나운 팔자라 할수 있지요.
 아까시나무의 원산지는 원래 북아메리카 지방입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아카시아’를 닮아 그동안에는 아카시아’ 나무로 잘못 알려져왔습니다.
 종소명(種小名)도 ‘아카시아를 닮은’ 혹은 ‘가짜 아카시아’를 뜻하는 Pseudoacacia였습니다.

 

 


 이 아까시나무는 1891년 일본인이 묘목을 가져와 처음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둥산이 많았던 시절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1900년 초부터 산림 녹화용, 사방용으로 전국 각지에 식재됐습니다.

 

 

 

하지만 넘치는 생명력 탓에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땅을 망치게 하려고 일부러 심었다는 오명을 들었습니다.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셈입니다.
 대부분의 사유림 산주들이 벌목 1순위로 아까시나무를 지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일부 산주들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숲가꾸기 사업시 자부담 10%만 부담해 아까시나무를 집중적으로 잘라냈습니다.
 숲가꾸기 사업은 산주의 신청을 받아 국가(50%)와 자치단체(40%)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강원 춘천시의 도심 인근 야산에서 산책을 하던 한 주민이 잘려져 나간 아까시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아끼시나무가 집중적으로 잘려 나가자 양봉업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양봉업계엔 아까시나무는 젖줄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양봉업자들에게 벌꿀의 70%가량을 아까시나무 꽃에서 채밀(採蜜)하고 있습니다.
 한국양봉농협조합장은 “꿀 생산뿐 아니라 화분매개를 통한 공익적 가치가 6조원 이상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며 “정부는 숲가꾸기 사업을 통한 아까시나무 벌목을 더는 방치해선 안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최고의 밀원수(蜜源樹·벌들이 꿀을 채취할 수 있는 수종)인 아까시나무가 줄어들면서 꿀 생산량도 급감했습니다.
 양봉업자들은 “6~7년 전만 하더라도 양봉 1군(꿀벌 2만~3만마리를 기르는 벌통)당 연간 25~30㎏의 꿀을 생산했었으나 요즘은 10~15㎏으로 줄었다”고 말합니다.
 양봉업계가 “고사위기에 직면했다”며 반발할 만도 합니다.
 연간 4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국내 3만5000여 양봉농가는 수년째 밀원수(蜜源樹) 보호를 외치면서 산주들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아까시나무의 위상도 서서히 달라지고 시작했습니다.

 

 

 

 산림청은 최근 국·공유림의 숲가꾸기 과정에서 밀원수를 보호하도록 지침을 내리는가 하면 자치단체와 협력해 밀원수 군락을 조성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동부지방산림청과 강릉시는 양봉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올해 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일원 9㏊에 밀원수인 아까시나무 1만3500 그루를 심었습니다.
 동부지방산림청은 국유 양묘장에서 생산한 아까시나무 1만2000그루를, 한국 양봉협회는 1500 그루를 지원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축구장 12배 규모에 해당하는 면적에 아까시나무가 심어진 것입니다.
 밀원수를 조림하면 꽃을 따라 이동하면서 꿀을 채취하는 양봉 농가의 경영비 부담이 줄어 소득 증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른 자치단체들도 양봉농가들을 위한 밀원수 조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 사이 아까시나무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면 세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정말 실감 납니다.
 아무쪼록 양봉농가들이 올해 생산하는 꿀에 그윽한 아까시 향이 가득 담기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