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과 2009년 8월 심장마비로 타계한 고(故)조오련 선수는 ‘대한의 물개’ 또는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수영선수라도 물속에서 물개보다 빠르진 않다.
물개는 바다에서 수영선수들보다 4배 정도 빠른 시속 20~25㎞가량의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의 물개가 펭귄이나 어린 상어, 심지어 거대한 크기의 문어를 사냥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속속 공개되는 것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이처럼 물속에서 대단한 민첩성을 보이는 물개가 최근 강원 동해안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4월 9일 오전 7시쯤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항 동방 0.6마일 해상에서 길이 2.3m, 몸둘레 1.2m, 무게 200㎏ 크기의 수컷 물개 한 마리가 정치망 그물에 걸려 죽어 있는 것을 조업 중이던 어민이 발견, 속초해경에 신고했다.
4월 9일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항 동방 0.6마일 해상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채 발견된 물개.<속초해경 제공>
이날 발견된 물개는 죽은 지 2~3일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해경은 상처 등 찢긴 흔적이 전혀 없는 등 혼획(混獲)된 것으로 판단되자 이 물개를 어민에게 인계했다.
혼획은 특정 어류를 잡으려고 친 그물에 엉뚱한 종(種)이 걸려서 잡히는 것을 말한다.
물고기를 잡으려 바다에 쳐 놓은 그물에 뜻하지 않게 물개가 걸려든 셈이다.
4월 9일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항 동방 0.6마일 해상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채 발견된 물개.<속초해경 제공>
올들어 4월초까지 강원 동해안지역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채 발견된 물개만 15마리에 달한다.
최근 3년 동안 동해안에서만 30여마리의 물개가 이같은 수난을 당했다.
이들 물개는 물고기 떼를 쫓다가 그물에 걸려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민들은 “무리지어 다니는 청어 등을 잡는 그물에 물개가 자주 걸린다”고 말한다.
지난 2월 강원 동해안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물개.<속초해경 제공>
환경보호단체 등에서는 “전세계적으로 120만 마리에 불과한 물개의 개체수가 기후변화와 먹이 감소 등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적 보호종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물개를 적절하게 보호할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물개 보호를 위해 어민들의 조업활동을 제한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수난을 당하는 것은 물개뿐이 아니다.
지난 2월 25일에는 강원 고성군 죽왕면 봉포리 동방 0.5마일 해상에서 천연기념물 331호인 ‘잔점박이물범’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은채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월 동해안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채 발견된 잔점박이 물범.<속초해경 제공>
‘잔점박이 물범’은 천연기념물이어서 위판이 금지되고 있다.
폐사된 경우에는 해당 자치단체가 문화재청의 인허가를 받아 박제 또는 매립 처리해야 한다.
이와 달리 물개는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컷이 더 선호도가 높다.
바로 수컷에 달려 있는 외생식기인 해구신(海狗腎) 때문이다.
물개의 수컷은 번식기에 수십마리의 암컷과 교미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인해 동양에서는 물개의 성기인 해구신이 정력을 강하게 해준다고 여겨지면서 고가에 거래돼 왔다.
간혹 물개고기 수육이나 스테이크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2003년 국내의 한 식품업체가 캐나다에서 물개고기 80t을 수입해 판매한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까닭일게다.
전문가들은 “정력증진엔 특정 육류를 섭취하는 것보다 운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굳이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물개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
동물원이나 수족관 등에 갇혀 보양특식으로 연어를 받아 먹는 물개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자유롭게 거친 물살을 헤치며 청어 떼를 쫓아 다니는 물개가 더 행복할 것이란 점이다.
물론 어렵겠지만 머리를 맞대고 물개를 보호할 묘안을 짜내는 노력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으론 그물에 걸려 주검이 된 처참한 모습보다 바닷물 속에서 인간과 교감하는 물개의 모습을 전하고 싶다.
경향신문 최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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