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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선 요즘 이것이 제철

말짱 도루묵?

 요즘 강원 동해안 지역에선 도루묵이 정말 ‘말짱 도루묵’이 됐습니다.
 지난 겨울 도루묵이 너무 많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겨울철 별미인 도루묵이 철을 잊었을까요?
 봄철인데도 불구하고 냉동창고엔 재고 도루묵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4월까지 도루묵이 계속 잡히니 냉동 도루묵은 좀처럼 팔기도 쉽지 않습니다.
 동해안 최북단인 고성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고성수협 창고엔 지난해 겨울에 잡힌 알이 꽉찬 도루묵이 6만상자나 쌓여 있다고 합니다.
 시가로 9억원 상당의 도루묵이 수개월째 냉동창고에서 보관되고 있는 것 입니다.
 보관비용만 8000만원~9000만원에 달합니다.
 이 모든게 수요가 어획량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일입니다.

 

 

강원 양양군 물치항에서 어민들이 그물에 걸린 도루묵을 털어내고 있는 모습. <양양군 제공>


 어민들은 “봄철에도 냉수대가 형성돼 도루묵이 많이 잡히는데 판로가 막혀 큰 일”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도지사까지 도루묵을 팔기 위해 발벗고 나섰을까요?
 팔로워가 12만5000명에 달하는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최근 트위터(http://twtkr.olleh.com/moonsoonc)에 ‘도루묵 먹고 어민 살리고!’란 글을 올렸습니다.
 “팔아주세요 맛있는 도루묵, 강원도 최북단 청정 도루묵이 팔리지 않아 6만 상자나 쌓여 있습니다. 40마리 포장 2만원(택배비 포함).”
 전화번호까지 상세히 안내한 최 지사는 주문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답글을 계속 달고 있습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트위터 통해 도루묵 판매 요청

 

 지난해 감자복장을 하고 전통시장 상품 홍보에 열을 올리던 최 지사가 이번엔 도루묵 판매 전도사로 나선 것입니다.
 고성군도 시름에 빠진 어민들을 돕기 위해 공무원은 물론 유관기관 및 사회단체, 출향단체 등을 대상으로 ‘도루묵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일단 4월말까지 판매운동을 전개해 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전국 각 자치단체에도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강원 동해안엔 냉동 도루묵 300t가량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수년째 이어온 도루묵 자원회복 사업의 효과로 예년에 없던 풍어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성군 거진항에서 도루묵을 상자에 담는 모습.<고성군 제공>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리어카에 도루묵을 가득 담아 골목길을 누비며 삽으로 퍼서 팔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철 동해안에서 흔하게 잡히던 도루묵이 한때 자취를 감춘 적도 있습니다.
 1970년대에 매년 2만5000t가량의 잡히던 도루묵은 2007~2009년 사이 어획량이 2720~3800t으로 급감했습니다.
 40년만에 어획량이 9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 것이지요.
 냉수성 어종인 도루묵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상승과 백화현상 확산으로 인한 산란처 파괴, 치어 남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민들 사이에선 도루묵이 ‘금태’로 불릴 정도로 귀한 물고기가 된 명태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됐습니다.
 급기야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등이 자원증식을 위해 7년 전부터 해안가에서 어로작업 중 버려지는 도루묵의 알을 수거해 수조에서 부화시킨 뒤 방류하는 사업을 벌였습니다.
 2010년 30만 마리, 2011년 60만 마리, 지난해 100만 마리를 방류했습니다.
 올해도 230만 마리의 도루묵 치어가 고성지역 연안에 방류됐습니다.
 치어 방류사업의 효과로 지난해 도루묵 어획량이 5000t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주변 해역에 낮은 수온이 형성되고 먹이환경이 개선돼 도루묵 어획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도루묵은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 등 북서태평양의 차가운 물에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입니다.

 

도루묵

 

 

 예전에 도루묵은 목어(木魚)로 불렸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올랐던 선조가 신하가 구해온 목어를 먹고 난 뒤 “너무 맛있다”며 ‘은어(銀魚)’로 부르라 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후 도성으로 돌아와 이를 다시 먹어본 임금이 실망해 “도로 목어로 부르라”고 해 ‘도루묵’이 됐다는 얘깁니다.
 정조 때 이의봉(李義鳳)이 편찬한 ‘고금석림(古今釋林)’엔 고려왕이 이 같은 말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기름기가 많은 흰살 생선인 도루묵은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이뿐 아니라 수놈의 정소엔 세포를 재생시키는 핵산이 많이 들어 있어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봄을 시샘하듯 예년보다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눈 팔지 말고 빨리 퇴근해 도루묵 찜을 맛보면 어떨까요.
 도루묵을 많이 드시는게 동해안 어민들을 돕는 길입니다.
 경향신문 최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