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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선 요즘 이것이 제철

도대체 시래기가 뭐길래?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것이다.
시래기를 삶아 물에 불렸다가 간장이나 된장을 넣고 쑨 ‘시래기죽’은 요즘 별미로 여겨진다.
하지만 장년층에게 시래기는 굶주림의 상징이었다.
한때 ‘시래기죽 한 그릇도 못먹었냐’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기운없어 보이는 사람을 두고 했던 말이다.
겨울철 쌀 등 양식이 바닥날 무렵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시래기다.
이때문에 늦가을 부터 초겨울 사이엔 집집마다 처마밑 새끼로 시래기를 엮어 말리느라 분주했다.

 

양구 시래기축제 장에 설치된 시래기 터널.<양구군 제공>

 


이렇듯 시래기는 우리민족에게 있어 구황(救荒)의 의미까지 있다.
이같은 애환이 서려 있어서 일까?
장년층들은 시래기를 ‘바람이 말리고 세월이 삭힌 깊은 맛’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추억의 먹을거리였던 시래기가 지금은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식이섬유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 시래기는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식물에 비해 철분과 칼슘도 함유량도 많다.
빈혈, 변비,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을 여성들이 외면할리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무청만을 생산하는 시래기 전용 무를 재배하는 마을도 생겨났다.

 

양구 펀치볼마을 시래기축제 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특산품판매장을 둘러보고 있다.<양구군제공>


최북단 마을인 강원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마을 얘기다.
펀치볼 마을은 청정 ‘시래기’를 대량 생산해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당시 유명한 격전지로 화채 그릇(Punch Bowl)모양의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해 있는 이 마을 64개 농가는 지난해 100㏊에서 238t의 시래기를 생산해 23억여원의 판매수익을 거뒀다.
올해에는 80여개 농가가 140㏊에서 320t의 시래기를 수확해 32억여원의 농가소득이 기대되고 있다.
양구 펀치볼시래기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
올해부터는 대형마트에서도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롯데마트 등 전국 105개 매장을 통해 판매되는 것을 비롯, 농산물유통회사를 통해 해외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현재 펀치볼시래기는 양구 제1,2명품관, 직거래 등 오프라인, 펀치볼정보화마을(http://punchbowl.invil.org/033.481.2648) 등 인터넷 온라인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주민들은 하루에 수백통의 전화가 쏟아진다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양구 펀치볼 마을 시래기덕장.<양구군 제공>


펀치볼 마을 주민들이 시래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한 것은 8~9년 전부터다.
무청을 건조해 만드는 시래기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해야 부드러워지면서 상품가치가 올라간다.
이곳 주민들은 전체 면적의 74%를 산림이 차지하고 일교차가 큰 고랭지의 특성을 감안, 친환경 농법으로 시래기를 생산하는 데 몰두했다.
양구군도 통일농업시험장을 조성하고 전문연구소와의 협약을 통해 육묘공급과 시험재배, 조직배양 사업 등의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펀치볼 마을은 타 지역과 달리 무청을 얻기 위한 품종을 따로 선택해 재배하고 있다.
특히 2년전부터 안토시안이 많이 함유된 보라색을 띠는 무에서 채취한 무청으로 시래기를 만드는 등 기능성 제품 생산도 시작했다.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무청을 이용해 시래기를 생산하다보니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좋아 1㎏에 1만2000원 선에 팔리고 있다.

 

양구 펀치볼 마을 시래기 덕장.<양구군 제공>


양구군 해안면 해안휴게소 광장 일원에선 매년 12월 ‘시래기축제’도 개최된다.
축제기간엔 트랙터 짐받이를 개조하여 관광객을 태우고 시래기 덕장을 돌아보며 향수를 느끼는 트랙터 마차타기, 무청을 이용한 윷놀이, 무탑 쌓기 등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축제장을 찾으면 시래기국밥, 시래기찐빵, 시래기산채 등도 맛볼 수 있다.
시래기축제를 즐긴 후 인근에 위치한 제4땅굴, 을지전망대, 전쟁기념관, 통일관 등을 견학할 수 있어 1석 2조다.

 양구 명품 펀치볼 시래기.<양구군 제공>

이처럼 양구 펀치볼 마을이 시래기를 생산해 큰 성공을 거두자 강원 홍천, 삼척, 전북 순창 등 전국 각 자치단체들도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시래기를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홍천군농업기술센터는 서면과 남면 지역에 친환경무청시래기 시범단지조성 사업을 추진, 30㏊규모의 재배단지를 조성했다.
삼척시 농업기술센터도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하여 시래기 건조가공 시범사업을 추진중이다.
한동안 밭에서 무를 수확한뒤 무심코 버리던 무청이 농가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깊어가는 겨울밤 가족과 함께 시래기 된장국과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면 정이 더욱 깊어질 것 같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