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과 도심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고 있는 멧돼지떼의 공격으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멧돼지에 물려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살인 멧돼지’ 또는 ‘멧돼지 습격’이란 신조어 까지 생겨났다.
 엄청난 힘과 날카로운 송곳니로 위협을 가하고 있는 멧돼지는 산중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른지 오래다.
 호랑이 등 맹수의 멸종으로 천적이 없어지면서 개체수가 급증한 멧돼지가 겨울철 먹이 부족 등으로 민가 주변에 접근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 17일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 야산에서 사살된 길이 1m50㎝, 무게 200㎏의 수컷 야생멧돼지. │삼척경찰서 제공

 

악몽 되풀이될까 불안한 삼척 가곡면 주민
 지난 16일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를 비롯, 태백, 경북 울진과 봉화지역엔 미처 생각치도 못했던 안전 주의보가 내려졌다.
 삼척경찰서는 하루전 가곡면의 한 야산에서 멧돼지떼의 공격을 받은 마을 주민 2명 중 1명이 숨지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약초채취 등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며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
 지난 15일 낮 12시 15분쯤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속칭 비비골 인근 야산에서 ㄱ씨(36)와 ㄴ씨(48) 등 주민 2명이 겨우살이를 채취하던 중 6~7마리로 추정되는 멧돼지떼의 공격을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멧돼지에게 허벅지를 물린 ㄱ씨는 과다출혈로 인해 숨졌고, 가벼운 부상을 입은 ㄴ씨도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 불안 상태를 보이고 있다.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 야산에서 사살된 멧돼지를 엽사들이 살피고 있다.│삼척경찰서 제공

 

 숨진 ㄱ씨는 3~4살 배기 아들과 딸을 둔 다문화 가정의 가장이어서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같은 사고가 발생한 직후 경찰이 멧돼지 습성과 대응책이 담긴 유인물까지 배포하자 주민들은 문밖 출입을 자제한 채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척시와 삼척경찰서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공무원과 엽사 등 77명과 사냥개 53마리를 동원, 2명의 사상자를 낸 멧돼지떼를 추적한 끝에 사고 발생 지점에서 약 1㎞ 가량 떨어진 지점 등에서 모두 7마리의 멧돼지를 사살했다.
 200㎏ 가량의 어미 멧돼지 3마리와 50㎏의 새끼 멧돼지 4마리였다.
 엽사들은 이들 멧돼지로부터 쓸개를 꺼낸 뒤 사체는 자연처리 되도록 사살현장에 그대로 놔 뒀다.

 사고 발생 나흘만에 수색·포획작전이 모두 종료됐으나 삼척시 가곡면 지역에 드리워진 멧돼지 공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가곡면 탕곡리 마을과 인접해 있는 오저리의 윤상용씨(63)는 25일 “멧돼지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던 ㄴ씨가 어제 심리적 불안 상태를 보여 병원으로 다시 이송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ㄴ씨가 주변사람들에게 ‘산만 봐도 멧돼지가 공격할 당시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말을 자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이어 “대다수 주민들이 불안한 마음에 아직까지도 산 주변에 가지 못하고 있다. 산중에 늘어난 맷돼지를 언제까지 방치할지 정말 걱정”이라며 복잡한 속내를 털어놨다.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 야산에서 사살된 멧돼지.│삼척경찰서 제공

 

주민들 “산양보호도 좋지만 멧돼지는 잡아야”
 가곡면 주민들은 이 일대에 설정된 산양보호구역이 ‘멧돼지 공격’이란 화를 불렀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명의 사상자를 낸 멧돼지 공격사고를 계기로 산양보호구역의 조정과 수렵허가 여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척시는 지난달부터 내년 2월까지 유해 야생동물을 줄이기 위해 수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가곡면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의 서식지란 이유로 일부 지역을 제외한 산림 152㎢ 중 80%가량인 120㎢가 수렵금지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강원 양구군 산양증식장에서 자라고 있는 산양. │양구군 제공

 

 윤상용씨(63)는 “사냥개와 엽사의 냄새를 맡은 멧돼지떼가 수렵금지구역인 산양보호구역으로 이동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또 다른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삼척시가 환경부와 협의해 산양 보호구역 내 멧돼지를 포획하는 방안이 마련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렵장을 확대할 경우 산양서식지 훼손은 물론 총기사고 등 돌발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삼척시는 산양보호구역 조정 문제는 관련 부처간 협의를 통해 면밀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 야산에서 사살된 멧돼지. │삼척경찰서 제공

 

잦아지는 멧돼지 출몰 빈도, 원인은?
 강원도 내에서는 3일에 한 번꼴로 주민들이 멧돼지와 맞닥뜨려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소방안전본부는 올들어 현재까지 119에 접수된 강원도 내 멧돼지 출몰 신고는 모두 83건에 달한다고 25일 밝혔다.
 특히 7월∼12월 사이에는 매월 평균 10건 이상 출몰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분석됐다.

 산악이 발달한 강원도 뿐 아니라 서울 등 수도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서울 도심의 멧돼지 출현 건수도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의 조사결과, 도심 멧돼지 출현으로 인한 119 구조출동은 올들어 11월 말까지 월 평균 29.4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5.4건 보다 약 2배가량 많은 수치다.
 연간 출동 횟수도 2011년 43건, 2012년 56건, 2013년 135건, 2014년 185건, 올해 11월 말까지 324건 등으로 급증한 것으로 분석됐다.
 장소는 등산로가 47%로 가장 많았고, 주택, 아파트와 공원, 도로, 학교 등에서도 신고가 잇따랐다.
 이처럼 멧돼지 출몰이 잦아진 것은 천적이 없어져 개체수가 급증한 상황에서 등산객들의 도토리 채취 등으로 인해 먹이가 부족해진 탓으로 추정되고 있다.
 야산 등에 둘레길이 많이 생겨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겨울철 먹이다툼에서 밀려 굶주린 채 민가 주변에 출몰한 멧돼지는 더욱 사나워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남 의령군 봉수면 상곡마을회관 앞길에서 ㄷ씨(75)가 멧돼지에게 오른쪽 허벅지를 물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추적에 나선 경찰은 이날 오전 11시20분쯤 마을회관 인근에서 ㄷ씨를 공격한 멧돼지를 사살했다.
 지난달 27일 부산 강서구의 한 매립지에 맷돼지 11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나 경찰이 엽사2명과 사냥개 5마리를 동원해 5시간여만에 모두 사살했다.
 경찰은 가덕도에서 서식하던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러 인근 진우도로 갔다가 2㎞ 남짓 바다를 헤엄쳐온 것으로 추정했다.
 이밖에 지난달 21일엔 경북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 용천사 맞은편 야산 6부 능선에서 ㄹ씨(57)가 남편과 함께 산을 내려오다 멧돼지에게 허벅지와 종아리 등을 물려 치료를 받던중 과다출혈로 이튿날 숨졌다.
 멧돼지 포획실적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 내 수렵장에서 잡힌 멧돼지는 모두 397마리다.
 2013년 284마리에 비해 40% 증가했다.
 강원 정선군 김기철씨(46)는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려고 산중 묘지까지 훼손하는 사례도 많다”며 “개체수가 크게 늘어난 멧돼지가 산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 야산에서 사살된 멧돼지. │삼척경찰서 제공

 

멧돼지는 공공의 적? 농작물 피해도 급증
 멧돼지, 고라니 등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면적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늘어난 야생동물 개체 수에 비례해 피해면적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동물에 의한 강원도 내 농작물 피해면적은 2012년 1772㎡, 2013년 2171㎡, 2014년 2465㎡에 달한다.
 불과 2년만에 피해면적이 30%가량 늘어난 셈이다.
 주된 피해작물은 옥수수, 벼, 콩, 감자, 배추, 고구마 등이다.
 강원도는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매년 33억원~39억원 가량을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일대 야산에서 사살된 멧돼지. │삼척경찰서 제공

멧돼지 출현 시 대처 요령은?
 멧돼지 등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새끼를 거느렸거나 굶주렸을 땐 사납게 돌변한다.
 종족 보호본능으로 인해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격할 수 있는 만큼 번식기 등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는 멧돼지는 교미기인 11~12월, 포유기인 4~5월에 성질이 난폭해 지는 만큼 발견 즉시 조용히 피하는 것이 좋다.
 흥분한 멧돼지는 보통 움직이는 물체에 저돌적으로 달려들며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환경부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멧돼지 출현 시 ‘상황별 국민행동 요령’을 홍보하고 있다.
 환경부는 등산을 하다가 멧돼지와 마주치면 등을 보이며 달아나지 말고, 신속히 주위 나무나 바위 뒤로 피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길을 걷다 멧돼지를 발견하면 갑자기 움직여 흥분시키지 말고 신속하게 112나 119 등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멧돼지를 쫓기 위해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 등으로 위협하는 행위도 삼가해야 한다.
 강원도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멧돼지는 소리를 치는등 먼저 자극하지 않으면 잘 공격하지 않는다”며 “멧돼지와 마주치면 천천히 뒷걸음질 하면서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Posted by 경향 최승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S9d 2020.07.03 0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