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가 어둠을 뚫고 새벽을 깨운다.
붉은 해가 수평선 끝에서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동해의 푸른 물결에 묵은 때를 씻은듯 그 어느 때보다 말갛다.
거센파도는 붉은 심장을 토해낸 것이 못내 아쉬운듯 기암괴석에 몸을 부딪쳐 하얀 포말을 뿜어내며 여명의 운치를 더한다.
도량 앞에 삼삼오오 몰려든 세인들은 거친 바다위로 솟아오른 상서로운 해를 바라보며 두손을 모은다.
그리고 저마다 마음속 짐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놓고 간절한 기원을 이어나간다.
일상에 찌든 번뇌도 훌훌 털어버린 모습이다.
이른 새벽 해안가 사찰인 강릉 등명 낙가사에서 바라본 해맞이 풍경은 색다른 느낌을 받게 한다.
등명 낙가사 입구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일출을 바라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조용한 곳이 좋아 수년전부터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낙가사 입구에서 며느리와 함께 가족의 건강을 빌고 있던 한 70대 할머니는 3박4일 일정으로 동해안 지역 해안가 사찰 2∼3곳을 돌며 해맞이를 계속할 계획이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곁에 있던 며느리는 “지난해부터 어머니를 따라 다니고 있는데 가는 곳마다 감흥이 다르다”며 한마디 거든다.
그는 “여명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정담을 나누다 보니 고부간의 정도 깊어지는 것 같다”며 해맞이 후 사찰의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또하나의 재미라고 귀띔했다.
정동진에서 약 4㎞ 떨어진 괘방산 중턱에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등명 낙가사.
인간문화재 유근형옹이 청자로 빚어낸 ‘오백나한상’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절경속에 위치해 있어 가족단위 해맞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산세도 험하지 않아 해맞이 후 트레킹하기에도 적당하다.
철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빈혈, 부인병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사찰 입구의 등명감로약수는 여행객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매일 아침 낙가사를 찾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약수를 받고 있다는 40대 아주머니는 “해맞이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새해 첫날의 번잡함을 피해 해맞이에 나서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환상적인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임해사찰은 강원 동해안 지역에 산재해 있다.
바닷가 사찰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양양 낙산사와 동해 감추사 등이 바로 그곳이다.
바다를 품에 안고 있는 듯한 양양 낙산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천년고찰이다.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도량으로 꼽히는 이 사찰은 동해의 절경과 어우러져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음보살이 바다에서 붉은 연꽃을 타고 솟아오른 자리 옆에 절을 지었다는 홍련암은 출렁이는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에 있어 해맞이 명소로 여겨지고 있다.
법당 안 마룻바닥의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면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볼 수 있어 이색적이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의상대에 서면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 붉은 태양이 의상대 아래 바위를 비추면 마치 부처님 얼굴이 나타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해 감추사도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진 해맞이 명소다.
신라 진성여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가 이곳에서 병을 고치고 부처님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이 사찰은 작은 해변과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진 절경속에 위치해 있다.
좁은 바위 틈새에 정교하게 지어진 관음전과 삼신각, 용왕각, 요사채 등은 신라고찰의 단아함을 담고 있다.
꼭 새해 첫날이 아니면 어떤가.
가족과 함께 동해안 지역의 임해사찰로 해맞이 여행을 떠나보자.
고요한 사찰을 찾아 수평선에서 막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심호흡을 하면 삶의 희망이 충만할 것 같은 느낌이다.
강릉/최승현 기자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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