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 위치한 방태산(芳台山)은 국내에서 가장 원시적인 생태환경을 갖추고 있다.
수령이 100년 이상된 소나무와 신갈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하늘을 향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치솟아 있다.
우거진 숲은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짙푸르다.
천수를 다한 듯 숲속에 드러누워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고사목들은 왠지 모를 낯섦과 함께 덧없는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계곡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각종 음지 식물과 이름 모를 풀꽃들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방태산 능선 사이에 골골이 들어찬 운해가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인제군 제공>
방태산은 기린면의 진동계곡과 함께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시림지대’ 또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로도 불린다.
해발 1443m로 규모 또한 웅장한 이 산은 사방으로 깨끗한 계곡과 폭포, 8~9㎞에 달하는 크고 작은 골짜기를 살포시 감싸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푸근함을 선사한다.
인제군과 홍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방태산은 북쪽으로 설악산·점봉산, 남쪽으로 개인산과 접해 있다.
주변이 온통 백두대간의 중심을 이루는 명산들이나 생태공원에 비견될 정도의 자연미를 발하고 있어 최근 들어 등산 동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산 정상의 전망도 기막히게 좋다.
멀리서 보면 주걱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 붙여진 주걱봉에 오르면 연석산(1321m), 응복산(1156m), 가칠봉(1240m)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도 가깝게 보인다.
방태산 2단폭포에서 계곡을 따라 힘차게 쏟아져내리는 물줄기가 청량감을 더해 주고 있다. <사진작가 오세기씨 제공>
설악산처럼 화려하지 않으나 수량이 풍부한 계곡과 완만한 주릉을 갖춘 속 깊은 산이어서 예부터 난리통에 숨어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 백성들 속에 유포된 일종의 예언서인 정감록(正鑑錄)에 방태산의 오묘한 산세가 여러 번 언급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봄이면 1200m 이상의 능선에 얼레지, 노랑제비꽃 등 각종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곳곳에 산재한 이끼계곡과 폭포가 청량감을 더한다.
방태산 이끼계곡.<인제군 제공>
가을이면 비경으로 손꼽히는 적가리골과 골안골, 용늪골 등에 만발한 단풍이 유혹하고 고목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설경은 초겨울부터 4월까지 이어진다.
사계절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나 방태산은 역시 여름 산행의 최적지다.
맑고 차디찬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지나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산림을 걷다 보면 어느 새 더위가 싹 가신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는 적가리골의 풍광은 단연 압권이다.
마당바위에서 300m 정도 올라가 계곡 중간에 걸쳐 있는 2단폭포의 수려한 경관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계단폭포라고도 불리는 이곳엔 피나무·박달·소나무·참나무류 등 다양한 수종이 자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담소(潭沼)의 맑은 물속에 열목어·메기·꺽지 등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방태산 자락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개인약수와 방동약수도 빼놓을 수 없다.
주걱봉 서남쪽 아래 해발 1080m에 위치한 개인약수는 고종황제에게 진상했다가 하사품을 받을 정도로 이름난 명수이고 ‘인제 8경’ 중 하나인 방동약수는 탄산 성분이 많아 톡 쏘는 맛이 일품으로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유롭게 삼림욕을 즐긴 후 들이켜는 한 모금의 약수는 한여름 폭염에 지쳐 있던 심신에 새 기운이 도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등반 안내>
방태산은 규모가 큰 만큼 등반하는 데 비교적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코스 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략 6~9시간 걸린다.
대표적 등반 코스는 △대개인동~개인약수~능선 삼거리~정상~구룡덕봉~대개인동(6시간20분) △살둔~숫돌봉~개인산~구룡덕봉~정상~능선삼거리~개인약수~대개인동(9시간10분) △대개인동~개인약수~배달은석~깃대봉~매화동계곡~송어양식장~매화동(6시간20분) △방태산자연휴양림~마당바위골~구룡덕봉~정상~깃대봉~1073봉~계곡 아우라지(8시간20분) 등이다.
초심자들은 대개인동 원점회귀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가장 짧은 코스인 데다 출발·도착지인 대개인동의 미산자연휴양림이나 개인산장까지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약수까진 그리 가파르지 않으나 이후 능선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구간의 경우 경사도가 급한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산행 후 여유가 있다면 내린천에 들러 래프팅을 즐기는 것도 좋다.
내린천 래프팅.<인제군 제공>
내린천은 그 길이가 70㎞에 달하며 푸른 물줄기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인제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상남까지 이어지는 52㎞의 구간이 래프팅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인제읍 합강 2리에 위치한 합강정도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조선 숙종 때 금부도사를 역임한 이세억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합강정은 소양강 상류인 내린천·인북천·북천 등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합강정 부근에는 번지 점프장도 있어 스릴을 만끽하려는 20, 30대 젊은층이 즐겨 찾고 있다.
이 지역에서 황태나 산채를 이용한 토속적인 음식을 맛보면 미각도 충족시킬 수 있어 일석이조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방태산을 가려면 홍천을 거쳐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해 상남~현리~방동 2리 코스를 택하면 된다.
대중교통의 경우 서울~현리간 버스편이 있기는 하나 운행 횟수가 적은 편이다.
경향신문 최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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