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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맛

송강 정철선생의 미각을 사로잡은 꾹저구탕

<강릉 꾹저구탕>

 

오대산 자락인 진고개와 노인봉에서 강릉 방면으로 흘러 내려오는 맑은 연곡천.
 이곳을 끼고 늘어선 먹거리촌엔 아무데서나 맛볼 수 없는 별식이 있다.
 ‘꾹저구탕’이 바로 그것이다.
 꾹저구탕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겐 이름부터 생소하게 느껴지는 음식이다.
 하지만 강원 영동지역 주민들에겐 삶의 애환이 담긴 토속 먹을거리로 통한다.
 이 지역에선 전국 각지에서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추어탕도 꾹저구탕의 명성에 눌려 기를 못편다.
 강릉 연곡면에서 소금강으로 향하는 6번 국도에 자리잡은 꾹저구탕 집에 사계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꾹저구탕 상차림

 

 

◇松江이 맛보고 ‘꾹저구’라 불러

 

 이 음식의 유래는 400여년 전 조선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초들에게 이름도 없는 먹을거리로 여겨졌던 이 음식이 꾹저구탕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조선 가사문학의 최고봉 송강 정철(鄭澈) 때문이었다.
 조선 선조 13년(1580년) 송강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할 당시 강릉 연곡지역을 순방했을 때 주민들로부터 접대받은 음식이 바로 꾹저구탕이었다.
 당시 이 지역 현감은 모처럼 찾은 관찰사를 대접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음식을 준비토록 명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 바다에 고깃배가 출어하지 못해 마땅한 찬거리가 없었다.
 주민들은 궁여지책으로 연곡천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정성껏 탕을 끓여 올렸다.
 송강은 “그 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며 이 탕을 대체 무슨 고기로 끓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름조차 모르고 잡아먹던 고기라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던 주민들은 “저구새가 ‘꾹’ 집어 먹은 고기”라고 어렵사리 답했다.
 그러자 송강 선생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이 고기를 ‘꾹저구’라 부르면 되겠네”
 이후부터 이 물고기는 꾹저구로 불렸다.
 ‘강호(江湖)에 병이 깁퍼 죽림(竹林)의 누엇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때때로 학식있는 촌로들이 연곡천변 음식점에서 꾹저구탕을 시켜놓고 송강 가사의 한 구절을 읊조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송강 정철 선생이 느꼈던 꾹저구탕의 그 오묘한 맛은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강릉 연곡, 양양 등 영동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냉동 꾹저구

 

 

◇민물고기지만 비린내 없고 담백

 

 꾹저구탕의 가장 큰 특징은 담백하면서도 여느 민물고기와 달리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동지역 대부분의 음식점은 꾹저구를 한 마리씩 깔끔하게 손질해 체에 갈아 파와 다진 마늘, 된장, 막장, 고추장 등을 넣어 3∼4시간 가량 푹 끓여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몇몇 집은 꾹저구를 통째로 끓여 내놓거나 갈아 끓인 탕 위에 꾹저구 두어마리를 얹는 등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요리법을 달리한다.
 일부 음식점에선 당면을 넣은 후 달걀을 풀어 얹기도 한다.
 또 다른 곳에선 구수한 맛을 살리기 위해 우거지 등을 첨가한다.
 이곳 음식점 아주머니들은 “먹성이 좋은 꾹저구는 잔모래까지 마구 삼켜 손질하는 데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탕으로 끓여내면 맛이 좋아 한번 접해본 손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꾹저구 마니아가 된다”고 자랑을 늘어 놓는다.
 순수 토종 자연산이어서 미식가들로부터 더욱 호평을 받고 있다.
 꾹저구엔 단백질, 칼슘이 풍부하고, 칼륨, 니아신 등의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다.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맛이 돋보이는 것도 장점이다.
 또 위궤양을 방지해주는 점액소 무틴(mutin)이 들어있어 소화도 잘 된다.
 소화계통이 불편한 노약자들에게 안성맞춤인 보양식인 셈이다.
 이로 인해 설악산, 오대산 등 유명 관광지와 인접해 있는 양양군 양양읍이나 강릉시 연곡면 지역을 중심으로 꾹저구탕집들이 들어서 성업중이다.
 꾹저구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강릉지역에선 ‘꾹저구’로, 양양군에서는 ‘뚜구리’, 고성에서는 ‘뚝저구’, 삼척에선 ‘뿌구리’ 또는 ‘꾸부리’로 불린다.
 주로 1급 청정 하천에 서식하며 밀꾹저구, 박꾹저구(산꾹저구), 비단꾹저구 등 종류도 다양하다.

 

 

꾹저구

 

◇1급 청정하천에 사는 ‘귀한 몸’

 

 꾹저구는 원래 바다에서 살다가 연어처럼 봄철에 알을 낳기 위해 민물로 올라와 산란을 하고 다시 바다로 내려가는 어류다.
 주로 기수구역에 분포하지만 때론 하천 중류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몸 길이가 6∼14㎝에 불과하고 거무튀튀하게 못생긴 꾹저구는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강릉 남대천과 연곡천, 양양 남대천, 삼척 오십천, 마읍천, 고성 북천 등 영동지역 하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물고기였다.
 이 지역에 사는 40대 후반 남성들만 하더라도 인근 하천에서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며 놀다 족대로 순식간에 한사발 가량의 꾹저구를 잡았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오염이 가속화되면서 강릉 남대천 등 도심과 바로 인접해 있는 하천에선 꾹저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래도 꾹저구에 대한 영동지역 주민들의 애착은 대단하다.
 오감을 자극하는 꾹저구탕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강릉 남대천을 살리겠다는 사람들의 모임 명칭이 ‘꾹저구회’인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영동지역 주민들은 “이젠 청정 수질을 유지하고 있는 강릉 연곡천과 양양 남대천 일대에서만 꾹저구탕을 맛볼 수 있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머지않아 다른 하천에도 꾹저구가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또 “추어탕보다 담백하고 감칠맛이 나는 꾹저구탕을 맛보려면 올 가을 단풍 관광 길에 동해안지역을 찾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강릉/최승현 기자cshdmz@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