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원도의 생태 이야기

유용한 호랑이 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人死有名, 虎死有皮)’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든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단 얘기죠.
 자녀들이 출세하기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도 이같은 까닭일 겁니다.
 물론 자랑스러운 이름이어야 겠지요.
 타인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거론되는 더러운 이름 말고요.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오래산다’는 말을 의식해 오명을 뒤집어 쓰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가죽 말고 남기는 게 또 있다고 합니다.
 바로 똥이죠.
 똥 이란 말은 남을 비하하는데 자주 쓰입니다.
 ‘개똥 같은 ×’, ‘똥 연기’, ‘똥차보다 못한 ×’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쓰이죠.
 사람의 인분이나 개똥과 다르게 호랑이 똥은 유용하게 쓰인다고 합니다.
 야생동물을 퇴치하는데 호랑이 똥이 최고의 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니 말이죠.
 매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농민들이 호랑이 똥을 구하러 다니는 일까지 벌이질지 모르죠.

 

호랑이 똥 등 야생동물 기피물질 수거장면<정선국유림관리소 제공>


 정선국유림관리소는 최근 이색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조림목의 피해 방지를 위해 야생동물의 접근을 차단하는 기피물질 실험이죠.
 이번 실험은 겨울철 고라니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조림목의 윗부분을 씹어먹어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실시됐다고 합니다.
 정선국유림관리소가 지난 1월 28일 임계면 반천리 조림현장에 된장, 꿀풀과 식물인 소엽, 호랑이 변, 목초액 등 기피물질을 설치한뒤 지난 27일까지 2개월여간 모니터링을 한 결과, 호랑이 변 주변 나무에선 피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엽은 1그루, 된장 5그루, 목초액 찌꺼기를 설치한 주변에선 10그루의 나무에서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가 관찰됐다고 하네요.

 


 된장이나 뱀을 퇴치하는 것으로 알려진 목초액 찌꺼기는 야생동물 기피물질로 효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향이 짙은 소엽은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참고로 차조기’로 불리기도 하는 소엽은 자줏빛이 돌고 향이 짙은 식물입니다.
 장아찌나 튀김, 부각을 만드는데 쓰이는 등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향이 짙어 야생동물도 피하는 식물을 사람이 식용으로 쓰고 있으니 사람이 더 독한 모양입니다.

조사구

기피물질 설치 전 피해(2013. 1. 28.)

기피물질 설치 후 피해(2013. 3. 27.)

추가

피해율

(%)

()

피해

()

자연

고사()

생존율

(%)

()

피해

()

자연

고사()

생존율

(%)

호랑이변

22

20

2

78

-

-

-

78

없음

된장

5

4

1

95

5

5

-

90

5

소엽

24

22

2

76

1

1

-

75

1

목초액 찌꺼기

21

21

 

79

10

10

-

69

10

미설치

9

9

 

91

9

9

-

82

9

 

 정선국유림관리소는 이번 실험을 위해 서울대공원과 협약을 맺고 호랑이 변을 확보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호랑이 똥은 쉽게 구할 수도 없죠.
 사슴농장과 멧돼지농장에서 실시한 간접적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사슴은 호랑이 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먹이를 먹으러 오지 않았고, 멧돼지는 얌전해지는 반응을 보였답니다.

 

목초액 찌꺼기에 모여드는 사슴<정선국유림관리소 제공>

 

 

소엽에 주춤거리는 사슴<정선국유림관리소 제공>

 

 

 

호랑이 똥 주변에 사슴들 접근하지 않은 모습<정선국유림관리소 제공>


 정선국유림관리소측은 야생동물 기피물질 실험에서 호랑이 똥이 큰 효과를 나타내자 성분을 분석해 특허를 출원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자나 치타 등의 배설물도 효과가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갑자기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 납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냥 똥이라고 다 뭉뚱그려 함부러 취급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호랑이 똥이라면 말이죠. 경향신문 최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