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봄이면 제일 먼저 아지랑이를 떠 올리곤 합니다. 봄날 따듯한 햇빛이 쬐면 공중에서 공기가 아른아른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겠지요.

하지만 올 3월에도 강원도엔 눈이 내렸습니다. 적설량도 퍽 많아 한때 산간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지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강원도에선 3월에 모두 20번이나 눈이 내렸습니다. 남쪽지방은 예년보다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져 꽃축제 개최에 어려움이 많다는데 강원도는 여전히 겨울인가 봅니다.

뜬금 없이 철지난 눈타령을 하기 위해 춘삼월 눈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제겐 3월에 쏟아져 내린 폭설이 부모님의 고마움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는 매개체로 작용했습니다.

이달초 경향신문엔 ‘일 홋카이도 폭설의 비극, 위대한 아빠의 체온’이란 제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폭설이 내린 일본 홋카이도에서 경찰들이 승용차를 뒤덮은 눈을 걷어내는 모습.


3월 3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매서운 눈보라 속에 길을 잃은 50대 어부가 자신의 마지막 체온으로 어린 딸을 살리고 숨졌다는 소식이었지요.

홋카이도 유베쓰초(湧別町)의 도로변 창고 입구에선 전날 연락이 두절됐던 오카다 미키오(岡田幹男·53)가 눈속에 반쯤 파묻힌채 쓰러져 있었고 품속에선 초등학교 3학년인 딸 나쓰네(夏音·9)가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카다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품속에 있던 나쓰네는 저체온 증세를 보였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카다는 자신이 입었던 얇은 점퍼를 벗어 모자가 딸린 스키복 차림의 딸에게 덮어준 뒤 양손으로 딸을 끌어안은 상태로 발견됐다고 합니다. 눈보라속에 마지막 온기로 사랑하는 외동딸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초속 30m의 강풍이 불고, 최저기온은 영하 5.9도였다니 얼마나 추웠을까요. 얇은 점퍼까지 아낌없이 내주면서 외동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오카다씨의 부정(父情)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소식은 일본 주요 신문과 방송에 의해 대서특필 돼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감자바우로 불리는 강원도에서도 1970년대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디어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죠.

강원도 홍천군은 지난 3월 12일 내면 자운천 옆에서 홍천군 여성단체협의회 회원과 자운리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박정렬 여사 추모공원’ 준공식을 개최했습니다.

 

강원 홍천군 내면 자운리에 조성된 고 박정렬여사 추모공원에 박 여사가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_ 홍천군 제공

 


 박 여사는 홍천지역에서 살신의 모정을 보인 어머니의 표상으로 여겨지며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출가해 제주도에 살던 박 여사(당시 38세)는 1978년 3월12일 6살인 딸과 함께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가 홍천군 내면 자운리 불발령에서 1m 이상의 폭설 속에 길을 잃고 헤매다 탈진했다고 합니다.
 박 여사는 엄습해 오는 추위속에서도 윗옷을 벗어 딸에게 입힌 뒤 품에 안아 살리고 자신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을 때 어머니 품속에서 어린 아이만 울고 있었지요.


 홍천군 여성단체협의회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식을 살린 박 여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1978년 10월 사고지점 인근에 위령탑을 세우고 매년 3월 추모제를 지내왔습니다. 위령탑엔 이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눈보라 몰아치던 불발령 고갯길, 어린 딸을 살리고 숨져간 거룩한 어머니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아마 지금도 거룩한 어머니의 영혼은 그곳에 머물며 사랑하는 자식들을 걱정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박 여사의 애틋한 모정을 기릴 수 있는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자 홍천군은 2억3500만원을 들여 하천부지를 매입하고 1459㎡ 규모의 추모공원을 조성했습니다. 추모공원엔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의 박 여사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35년 전 폭설 속에 피어났던 ‘살신의 모정’이 동상으로 환생한 셈이지요. 인근 자운2리 노인회 회원들은 자신들이 평소 관리해 오던 자산홍, 회양목 등 500여그루의 나무를 기증해 추모공원 주변에 심었습니다.

 

 추모공원 준공식엔 당시 박여사의 품안에서 생존한 40대의 딸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현재 경남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박여사의 딸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어머니를 잊지 않고 신경써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감사함을 표했다고 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박 여사의 추모공원 건립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현대 가정의 가족애를 다시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남의 아픔을 보고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순박한 시골 어른들에게 다시한번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을 다시한번 떠올려 보는 춘삼월, 한편에선 막가는 10대들의 비행소식이 쏟아져 나옵니다.
 

학원폭력, 성폭력, 왕따 등등.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영어단어 몇개 더 외우는 것보다 폭설속에 자식을 살리고 떠난 아버지, 어머니의 소식이 담긴 기사 한줄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저도 22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온이 그립습니다.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담배도 끊으라는 70대 후반 어머니의 잔소리도 고맙게 느껴지는 춘삼월 입니다. 

 

Posted by 경향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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